출처: 여성시대 표류
주관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추천 순서는 랜덤입니다.
김애란 단편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고.
정이현 단편소설집
노 피플 존

⠀자신이 모르는 일들, 자신만 모르는 일들은 사방에 얼마나 많은가. 슬며시 발톱을 감추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을 노려 호되게 뒷덜미를 할퀴는 그런 일들은.
김이듬 시집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처음 듣는 음악처럼 귀에 들어온다
네가 올 거니까
새벽은 더 이상 푸른 절벽이 아니고
밤은 더 이상 미완의 종말이 아니다
「에튀드」
구병모 장편소설
절창

⠀한 권의 책을 펼칠 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세상의 코어를 이루는 것이 반드시 희망 내지 사랑만은 아니며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인간들과 혹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나 자신과 필연적으로 상종하거나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자 태초부터 운명지어진 비극이라는 사실이지. 그리고 그 비극을 견디는 게 인생의 거의 전부야.
이민하 시집
우울과 경청

우리를 부르며 우리를 향해 우리 속으로 달려갔어요
젖은 해변에 누워 주고받는 인공호흡처럼
티끌 없는 마음과 다만 한걸음
벽이 닫히면 틈이 열리고
우리는 문득 밤에 가까워지고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알 수 없는 문장처럼
한번도 꾸지 않은 꿈처럼
「이 터널 선샤인」
천선란 연작소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당장 죽을 것 같고, 가끔은 이미 죽은 것 같은데,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몸에도 이토록 단단한 뼈가 있구나. 무너지지 않겠구나. 나 약하지 않구나. 살아 있구나. 살아 있는 걸 마음에서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는데 미리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다는 것만 생각해야지.
최진영 에세이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다른 사람이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와 내가 다르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있어.
⠀사랑이 자취를 감추면 기다리자. 사랑도 지겨워져 바깥으로 나가고 싶을 때가 있겠지. 고치는 대신 새로운 에피소드를 쓰고 싶을 때가.
김혜순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레몬을 깔고 잠드는 시린 밤
우리에게 무관심한 이 슬픔
자기 전에 물 한 잔 마실래?
우리를 천천히 들어 마셔버리는 초승달
「초저녁」
김혜진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

⠀사랑은 극적이기보다 안정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오래전 자신이 상상한 것처럼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었으나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기능했다. 그건 언제나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 존재하는 무엇이었다.
이실비 시집
오해와 오후의 해

행복하고 싶어. 너랑 오래 함께 행복하고 싶어.
나는 네게 무엇도 휘두르지 않고
너는 나에게 어떤 멸칭도 붙이지 않은 채.
폭력과 가장 먼 곳에서 웃고 싶어.
그런 웃고 싶은 욕망이 매일 저지르는 가장 큰 폭력.
「내가 아는 폭력」
–
열 권의 책,
모두 2025년에 나온 한국 여성 작가 책 속 구절이야
자신의 글들이 조각조각 유명해져도
누구의 글인지도 모른 채 소비되고
손에 잡히는 건 없어서 슬프다는
어떤 작가의 말을 봤었어
이 글 속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여시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기를 바라
마침내 책으로도 만나게 되기를 바라
2026년 독서 결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