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들 중에서 정통성에 컴플렉스 있던 왕들.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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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는 27대 왕으로 이루어짐

왕조를 지탱하는 가장 큰 명분 중 하나가 바로 정통성

이 정통성을 제대로 이어받은 왕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해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왕도 있는데

1. 정통성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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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아들만 18명을 두었던 아버지 세종대왕과 정비인 소헌왕후의 장남. 몸이 병약해 일찍 죽은 것이 비극의 시작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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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세종의 장남인 문종의 장남이자 유일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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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아들을 16명 둔 성종의 장남. 어머니는 폐비 윤씨. 이복동생이 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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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효종과 인선왕후 사이의 유일한 아들. 효종은 후궁이 있었지만 후궁이 낳은 아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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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현종과 명성왕후 사이의 유일한 아들. 

*참고로 연산군, 현종은 왕조에서도 미남으로 유명. 연산군은 요즘 말하는 꽃미남 외모였다고 함. 또한 성종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키가 180 정도였다함

특히 단종, 숙종은 정통성에 있어서는 이를 능가하는 조선의 왕이 없다. 

단종과 숙종은 아버지가 모두 선대왕의 장남이었으며 어머니가 정실 왕비였고, 무엇보다 유일한 아들로서 정통성에 흠이 될만한 사항이 전혀 없는 경우.

(단지 단종은 눈뜨고 코베인 경우로 왕위를 빼앗겼을 뿐… )

2. 정통성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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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뭐 할 말이;;; 조선의 기틀을 세운 왕이 태종-세종-문종으로 치세가 계속 되고 나라도 안정기로 들어서던 시기였는데 자기가 왕이 되고 싶은 욕심에 조카 폐위시키고 형제들 죽이고 왕이 됨. 그렇게 권력은 잡았지만 백성들도 눈과 귀는 있어서 민심이 안좋았고 심지어 본인도 그걸 알고 있어서 항상 컴플렉스에 시달렸음ㅋㅋ 그래서 장남을 세자로 책봉했지만 만 19세에 죽어버리고 뒤를 이은 차남도 왕이 되긴 했지만 3년 만에 요절함. 태종이 왕자의 난 일으킨 건 자기가 더러운 짓 다 해서 아버지 옹립 시켰는데 새파랗게 어린 이복동생들한테 왕위를 넘긴다니 빡치는게 이해는 가는데 세조는 정말 그럴 명분이 1도 없었음. 그냥 욕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사실상 이후 조선왕조의 근간이 흔들렸다고 봐도 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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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조선 최초의 방계 출신 왕. 선조의 생부는 중종의 8남인 덕흥군. 조선왕조에서 태조 이성계를 제외하고 아버지가 왕이나 왕세자가 아닌 첫번째 왕이었기 때문에 컴플렉스가 어마어마 했다. 그 일환으로 자신의 생부인 왕으로 추존하려고 무지하게 애썼지만 실패함. 그래서 결국 덕흥대원군으로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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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선조가 정실 왕비 사이에서는 자녀를 낳지 못한 관계로 후궁이 낳은 아들만 14명이었는데 그중 5남인 정원군의 장남이 인조. 인조는 즉위 후에 이 정통성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10년을 대신들과 싸운다. 그러나 왕조 사상 정원군처럼 왕세자 근처에도 못가본 듣보 왕자가 왕으로 추존되는 역사는 있을 수가 없어서 신하들의 반대가 극렬했는데 결국 논리로 안되자 힘으로 찍어누르고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존할 수 있었다. 결국 선조-(원종)-인조라는 계보를 완성한 것이 본인 일생의 역작. 그리고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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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아버지는 숙종이나 어머니 숙빈 최씨는 무수리 출신이다. 더구나 형인 이복형 경종을 죽였다는 루머에 시달리기까지 해 노이로제 수준의 정통성 컴플렉스를 앓았다. 때문에 후계에 무척 신경을 썼지만 사도세자 역시 적통이 아니며 그마저 폐세자로 죽었다. 완벽함에 대한 편집증으로 사도세자를 유아기 시절부터 쥐잡듯 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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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철종 역시 적통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당시 조선왕조의 직계 혈통이 사실상 거의 끊긴 관계로 고종에 비하면 철종이 아주 거리가 먼 것도 아니었음. 핏줄을 따지면 고종은 사실상 인조의 3남인 인평대군의 8대손이다. 직계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었지만 그만큼 왕위를 이을만한 혈통이 거의 없었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