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천연두

출처: 여성시대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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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어린시절 천연두를 앓고
흉터가 남아 눈썹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고 하여
삼미자(三眉子)라는 호를 지었다.

정약용은 아이를 여럿 보았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을 천연두로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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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저술한 <마과회통>은
종두법을 이용한 천연두 예방을 최초로 소개한 책이다.

그러나 <마과회통> 편찬 3년 뒤
정약용은 신유박해로 유배를 가게 되고

유배지에서 막내인 ‘농아’의 부고를 듣게 된다.
농아의 사인 역시 천연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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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뿐만 아니라 박제가 등 실학자들이
종두법을 조선에 도입하고자 애썼으나

당시에는 서양에서 들어왔다는 이유로 배척당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종두법은 반세기 뒤
지석영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정약용이 막내를 잃고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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