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감독 : 장항준
극본 : 황성구 (박열, 리틀 포레스트), 장항준
단종 : 박지훈
광천골 촌장 엄흥도 : 유해진
궁녀 매화 : 전미도
한명회 : 유지태
금성대군 : 이준혁
영월 군수 : 박지환
노루골 촌장 : 안재홍
등장인물에 세조가 없음, 특별출연식으로 잠깐 나오는듯..

세조가 강원도 영월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 삼족을 멸한다 명했음에도 엄흥도라는 사람이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실제 역사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과 엄흥도 동상

단종이 죽고 동네 호장이었던 엄흥도가 밤중에 몰래 아들들을 데리고 가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인근 산에 올랐다. 그러나 급하게 일어난 일인데다가 날씨조차도 눈보라가 쳐서 맨 땅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산속에 앉아있던 노루 한 마리가 일행을 보고 놀라서 달아났는데 노루가 앉았던 그 자리에는 눈이 녹아서 맨 땅이 드러나 있었다. 이를 보고 엄흥도 일행은 천우신조라 여겨 그곳에 단종의 시신을 매장한 후, 식솔을 거느리고 자취를 감추었다.
사후 241년이나 지난 숙종때 단종이 정식으로 복권되어 왕릉을 이장하기 위해 지관을 조정에서 내려보냈는데 그들이 살펴보니 단종이 묻힌 그 자리가 이미 천하의 명당이었기에 이장하지 않고 묘제만 고쳤다고 한다.
단종이 복권되지 않은 시절, 장릉은 봉분도 없어 그냥 평평한 맨땅이었기에 다른 땅과 구분이 가지 않았고 풀도 무성한 자리였다. 그러나 그 지역 사람들 중에 그 자리를 밟거나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심지어는 어린아이들도 그 주변에서 놀 때, 그 자리를 향해서 돌을 던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재지가 알려지지 않았다고는 해도 인근 백성들은 암암리에 알고 있었고 이를 관에 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 비슷한 이야기로 단종의 시신과 엄흥도의 식솔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관에서 엄흥도 일가의 행방을 수색했는데 사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숨은 곳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관에 고하지 않아서 찾지 못했다고 전한다.
엄흥도는 중인 출신의 일개 지방 아전이었지만 세조의 눈을 피해 단종의 장사를 지낸 일로 후대에 높게 평가를 받게 된다. 단종이 복위되기 전인 선조 때 이미 그 자손은 노산군의 묘역을 관리하는 대신 병역을 면제받는 특권을 누렸고 후에 정조가 단종의 충신들을 정리하여 등급을 결정할 때, 단종 복위운동과 관련하여 죽은 이들 바로 다음으로 엄흥도를 놓았는데 아무리 절의를 다했다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단종과 관련되어 죽은 것이 아닌 이상은 사육신들과 동급으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원칙에서 유일하게 예외이자 심지어는 생육신들보다도 더 위였으며, 고종 때에는 아예 정승급의 관직을 추증한다. 죽은 이의 장례를 매우 중히 여겼던 조선 시대에 누구나 억울함을 알지만 감히 장사지낼 생각을 못했던 단종의 시신을 목숨걸고 수습한 공을 높이 산 것이다.
이 외에도 다른 왕릉과 달리 장릉에는 관련된 일화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아무래도 비극적인 단종의 생애와 수도에서도 먼 곳에 방치되어 민간층에서 관리되었던 점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덕분인지 조선왕조의 다른 장릉들과는 달리 가장 존재감이 큰 장릉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마다 영월군에서 주최하는 ‘단종문화제’에서는 단종 국장 행렬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