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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부자되려는여시

세종의 아들이자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고 포장하는 세조의 악행들 중 일부임

조카이자 왕인 단종 죽임
+족보에서 살아있을 땐 서자, 죽어서는 사생아로 만들어버림


동복(같은 배에서 태어남)형제 두명 죽임
안평대군
금성대군
+금성대군은 살던 곳 근처 백성들도 다 죽임(정축지변)피가 끝을 맺지 않고 흘러내린다고 지금까지 피끝마을이라 불림

이복형제 3명 유배후 유배지에서 죽을때까지 살게 함
회의군
한남군
영풍군

이복형제 유배 보내고 자객보내서 살해
영풍군

형수 현덕왕후 무덤 파헤침

현덕왕후 무덤 파헤치면서 합장되어있던 형 문종 무덤도 파묘됨

전하 그래도 형수님이고 형님이시고 선대왕이신데 이건 좀…?

그 부인이 죄인(단종)의 엄마잖아? 죄인의 엄마를 그냥 둬?

…..
현덕왕후 파묘건으로 한명회를 제외한 다수의 신하들마저 말렸지만 걍 팜
+세조는 현덕왕후를 왕후로 끝끝내 인정하지 않았음.. 때는 이미 현덕왕후가 죽은 지 16년이나 지났는데도 죄를 연좌시켜 폐위시킴. 소급해서 죄를 연좌함은 부당하다는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오는데도 세조는 현덕왕후의 폐위를 밀어붙임
문종과 현덕왕후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친형 문종에 대한 유구한 열폭의 감정… 본인의 정통성 세우기에 방해) 더 크게 작용했던 폐위는 오래지 않아 설득력을 잃고 복위 문제로 이어짐.. 성종 2년부터 꾸준히 제기되던 복위 문제는 중종 7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음 조정 대신들은 하루를 거르지 않고 복위 문제를 중종에게 고하였고 상소 또한 그치지 않음..

아빠 (세종대왕) 후궁 혜빈양씨의 머리를 강제로 깎고 비구니로 만들어서 절로 쫓아낸 다음 죽임

성녕대군의 부인 친숙모 폐서인으로 만듬

문종의 사위 정종 능지처참

문종의 딸이자 자신의 조카인 경혜공주를 유배보내서 노비로 강등시킴
경혜공주는 비구니가 되어 가난하게 살다가 나이 고작30살에 죽음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
단종이 유배되자 정순왕후는 부인으로 강봉되고 심지어는 관비로까지 곤두박질침
+신숙주가 정순왕후를 여종으로 달라고 했는데 세조는 차마 마지막 양심은 남아있었는지 왕비가 노비된지 7년이 지나서야
신분은 노비지만 노비로서 사역할 수 없게 하라는 명을 내려줌…
요약
세조는 아버지 세종이 아끼던 아들, 신하, 학자 도합 138명 이상을 죽임
폐서인은 기분 내키는 대로
아빠 후궁 능욕 후 살해
조금만 알아봐도 세조가 태종보다 더 명분없는 폐륜을 저지른 사실을 알 수 있음…
태종과 자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이는 태종이 무덤에서 관뚜껑열고 억울해할 일인게 태종은 적어도 동복형제들은 안 죽임
+세조가 태종보다 명분없이 죽인 이들 숫자가 훨씬…..
태조 이성계를 도와서 조선의 기틀을 다진 명백한 공로가 있는데다 세종대왕이라는 불세출의 명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업적이라도 있지 세조는 태종 세종 문종이 닦아놓은 조선 전기의 막강한 기틀들 특히 태종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세종->문종->단종 흐름으로 잘 이어질 수 있었는데 세조가 정통성&명분없이 왕위에 올라서 국방, 예산체제, 과학기술 토대를 만들어 놓은 것들을 싹 다 무너뜨림.
왕권강화라고 포장되지만 죽을때까지 계유정난 공신들 견제 못하고
공신인 훈구파를 기점으로 신권대립만 이끌어놓은 세조는…
연산군이란 희대의 싸이코 후손을 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