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코끼리 베이글
실제 정사(단종 실록)에서 언급된 내용을 바탕으로 추론해볼 수 있음.
당시 나이 12살
<단종 즉위년 6월 23일 갑신 1번째 기사>
: 고성 군사 안치강의 파직을 명하다
고성 군사(高城郡事) 안치강(安致康)의 첩의 딸이 일찍이 동궁에 들어가서 시녀가 되었는데, 안치강이 고을에 갈 때에 끌고 가고자 하여 궁인(宮人)으로 인하여 아뢰니, 노산군이 책하기를, ”이런 일을 어찌 아뢰느냐?” 하였다. 의정부에서 듣고 안치강의 죄를 청하니, 파직을 명하였다.
신하: 쟤 잘못함. 인맥 이용해서 인사 청탁 하려고 했어요
단종: ? 이걸 재고할게 있어? 당장 내쫓아
<단종 즉위년 11월 15일 계유 1번째기사>
: 대간에서 경연을 진강할 때 떠든 환관들을 국문할 것을 청하다 대간(臺諫)에서 아뢰기를,
“경연(經筵)에서 진강(進講)할 때 환관(宦官) 여러 사람이 어좌(御座)의 북쪽 장지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매우 무례하니, 청컨대 국문(鞫問)하소서.”
하니, 전지하기를, “좋다.”하였다.
신하: 경연에서 떠든 환관들 혼내야돼요
단종: ㅇㅇ 좋아. ㅇㅋ
14살 추정
<단종 2년 1월 9일 신유 3번째 기사>
: 하위지·이석형 등이 불당 철거를 청하다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하위지(河緯地)·직제학(直提學) 이석형(李石亨) 등이 아뢰기를,
“전날 불당(佛堂)을 헐어버리도록 청하였으나 성상께서 하교(下敎)하기를, ‘이를 다시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무릇 신자(臣子)가 계달(啓達)하는 말이 옳으면 옳다고 하시고, 그르면 그르다고 하시는 것이 가(可)하겠는데, 한갓 ‘다시 말하지 말라.’고 하시니, 신 등은 언로(言路)046) 가 이로부터 막힐까 두려워합니다.” 하였으나, 임금이 전지(傳旨)하기를, ”들어줄 수가 없다.” 하였다. 하위지 등이 다시 아뢰기를,
“신 등이 다시 불당을 헐어버리도록 청하는 것이 아니라, 성상께서 ‘다시 말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신 등은 언로(言路)가 막힐까 두려워하여서 이러한 청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들어줄 수가 없다.’고 하시니, 무슨 일로 들어줄 수가 없다고 하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전지하기를, ”내가 이른바 ‘다시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은 불당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하였다. 하위지가 말하기를,
“비록 불당의 일이라 할지라도 ‘다시 말하지 말라.’고 하시니, 또한 심히 불가(不可)합니다. 불당의 일을 금일에는 ‘다시 말하지 말라.’고 하신다면, 후일에 다른 일을 말하는 자가 있을 때에도 또한 반드시 ‘다시 말하지 말라.’고 하실 것인데, 어찌 가(可)하겠습니까? 청컨대 전하께서는 다시 이러한 말씀을 하지 마소서.”
하니, 임금이 전지하기를, “들어줄 만한 일이면 내가 마땅히 들어줄 것이다.” 하였다. 하위지가 말하기를,
“지금 성상의 하교(下敎)를 들으니, 신 등이 심히 기쁩니다. 불당의 일을 가장 먼저 들어주어야 할 일이니, 청컨대 모름지기 윤허(允許)하여 따르소서.” 하였으나, 임금이 전지하기를, “들어줄 수가 없다.” 하였다.
신하: 전하, 자꾸 토 달지 말라 하시면 신하들이 무서워서 말을 못한다구요 !
단종: 야, 난 불당만 얘기 하지 말랬지 언제 딴 이야기 하지 말라 했음?
신하: 아니 오늘 불당 하지 말라시면 내일은 딴 것도 하지 말라하실거잖아요 !! 취소해줘요!
단종: ㅡㅡ ……알았어 들어줄 만한 일이면 들어줄게 됐지?
신하: 오 그럼 ! 지금부터 당장 불당 때려 부수죠!
단종: 안 들어줘. 꺼져
<단종 2년 3월 14일 을축 1번째 기사>
: 김승경 등 6인을 용서한다 이르다
성균 생원(成均生員) 황구(黃耉) 등이 상언(上言)하기를,
“신 등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건곤(乾坤)은 널리 창조하여 만물(萬物)의 삶을 이루게 하고, 부모(父母)의 지극한 정(情)은 어리석은 자식의 허물을 빨리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군색하고 급박할 때에는 반드시 하늘과 부모를 부르니, 이것은 그 인자함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형(刑)과 벌(罰)을 삼가시어 무릇 죄와 허물이 있어도 정상이 가긍(可矜)하면 반드시 너그럽게 용서하여 자신(自新)248) 의 길을 열어 주시니, 그 부모에 이 백성이라는 뜻이 지극합니다. 지금 생원(生員) 김승경(金升卿) 등 6인이 2월 문묘(文廟)의 망제(望祭) 때에 감찰(監察)의 배리(陪吏)의 갓[冠]을 빼앗은 일로 인하여 옥에 갇혀 있는데 신 등은 차마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좀 굽어 살피소서.
무릇 서리(書吏)란 것은 천한 무리므로 당하(堂下)에서 분주한 것이 곧 그 직책입니다. 그 때에 감찰은 여러 집사(執事)와 더불어 당하(堂下)에서 재숙(齋宿)249) 하고 있는데, 이들 아전은 도리어 당상(堂上)에서 본관(本館)의 아전과 더불어 비스듬히 앉거나 눕거나 하고, 옷을 벗고 떠들며 웃기를 거의 기탄 없이 하였으니, 이것은 위 아래가 차례를 잃고, 갓과 신이 위치를 바꾸어 명분(名分)과 기강(紀綱)이 이에서 모두 무너졌으므로, 신 등이 보고 분이 치밀어 마침내 그 갓을 빼앗았습니다. 그 간(間)에 너무 서둘러서 조치를 잘못하여 헌장(憲章)을 저촉한 것은 대개 광포(狂暴)하고 어리석은 서생(書生)이 법률(法律)을 배우지 못한 소치(所致)이지 애초부터 능멸(凌蔑)하여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물며, 그 때에 김승경 등 6인뿐만 아니라 성균관 제생(諸生)이 모두 분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김승경 등만 그 허물을 뒤집어 썼으니, 신 등은 매우 민망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건곤(乾坤) 같은 도량을 여시고 부모(父母)같은 은혜를 내리시어, 특별히 명하여 거듭 다스리게 하시어 죄와 허물을 면하게 하소서.”
하니, 전지하기를,
”무릇 상소(上疏)는 반드시 국가의 대사(大事)에만 하는 것인데, 너희들은 벗을 구(救)하고자 꾀하니 심히 불가하다. 마땅히 추문(推問)해야 옳을 것이나 우선 용서한다.” 하였다.
신하: ㅠㅠ 동지 살려주십쇼 제발 간곡히 청 하나이다
단종: 나라의 상소는 국가 중대사에만 써야하는데
니 친구 구하자고 상소문을 써?
너네 이거 문책감인데, 이번만 봐준다
단종과 비슷한 나이대의 명종, 성종, 숙종의 기록을 봐도 성격이 다 다름

<기록: 성종 즉위년(1469년) 11월 29일>
대간(臺諫)에서 전왕(예종)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들을 처벌하라고 강하게 요청하자, 성종은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어려서 사리를 잘 모르니, 마땅히 대비(大妃)에게 물어서 결정하겠다
엄마 plz

<명종 즉위년(1545년) 8월 23일>
윤임 일파를 사사하라는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압박에 12살 명종이 보인 반응입니다. “나는 어려서 아는 바가 없으니, 오직 대비(문정왕후)의 가르침대로 따를 뿐이다.”
<명종 즉위년 8월 29일>
대신들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려 하자 명종이 울면서 반대했지만, 문정왕후가 화를 내자 결국 굴복합니다
“임금이 눈물을 훌리며 차마 못 하겠다고 하였으나, 대비가 크게 꾸짖으니 감히 어기지 못하였다”
명종 즉위 초 기록은 대부분 ‘대비의 전교(명령)’ 을 받았단 기록 뿐
22년을 재위했으나 조선 왕조 존재감 0에 수렴하는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예 정 반대의 왕도 있었음

<기록: 숙종 즉위년(1674년) 9월 25일>
서인과 남인이 복상 문제(예송)로 싸울 때, 신하들이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의견을 내자 숙종이 폭발합니다.
“너희들이 감히 나를 속이려 드느냐! 신하로서 임금을 능멸하는 것이 이토록 심하단 말이냐? 당장 물러가라!”

<기록: 숙종 즉위년 11월 4일>
신하들이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자 짜증을 내며 말합니다. “이미 말했는데 왜 자꾸 번거롭게 하느냐? 다시는 이 일을 입에 담지 말라.”

단종은 성종,명종처럼 유약하거나 의지하는 편도 아니고 숙종처럼 불 같이 화내는 타입도 아녔다함
(나이를 생각하면 성종, 명종이 일반적이긴함)
물론 단종은 어른들 아무도 없었고, 말 그대로 ㄹㅇ 혼자 남은 상황
기본적인 성격 자체가 마냥 유약하고 약한 성격은 아녔던 것
정사 기록으론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이 없었다고 함. 화냈다, 웃었다 기록 자체가 없음
보통 저 나이대 왕들은 두려워했다, 울었다, 화를 냈다, 효심이 넘쳤다 (=유약함) 등
아무리 조선시대라도 소년~청년의 나이대라 감정이 드러는데
시니컬, 짜증, 무표정, 그러를 그러세요st 였음
미디어에 언급되거나 묘사 됐던 단종의 모습은 이런 느낌인데


실제는 이 짤에 더 가까운 편

단종의 성격이 제대로 드러나는 대목은 수양 대군에게 옥새 넘길때임.
금성대군+김종서 다 죽고, 사실상 단종 거처에 군사들이 포진해있던 상황.
단종은 옥새를 수양에게 넘기려하고, 수양 대군은 울면서 거절하는 그 날의 기록임.
1455년(단종 3년) 6월 11일, <단종실록> 14권, 단종 3년 6월 11일 기록
” 내가 나이가 어려서 정사(政事)를 잘 모르는데, 숙부는 덕망이 높고 나라를 위해 애써왔으니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마땅하오. 어서 옥새를 받으시오”
예조 판서에게 명하여 옥새를 꺼내오라고 하자, 수양대군이 땅에 엎드려 울며 극구 사양함
> 단종이 “어허 어서 받으라니까, 하면서 옥새를 건네주려 함”
표면적으론 양보하는 미덕으로 보여지만, 당시 상황+기록을 연결해보면 상당히 싸늘한 화법임
숙부는 덕망이 높고 나라를 위해 애써왔으니
:니가 사람을 다 죽여 권력 잡았으니 니가 하는게 맞다 = 수양 대군의 명분을 정면으로 비꼰 것
수양 대군이 계속 거절 연기를 하자 단종은 길게 말 섞지 않고,
‘옥새 가져와’로 상황 종료 , ‘나는 네 연기를 받아줄 기분이 아니다’

실제로 수양대군은 단종이 너무 쿨하게 옥새를 내놓자,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더 크게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음. 조카의 냉담한 반응에 본인도 당황한거임
세조(수양대군)가 부복(엎드림)하여 극구 사양하며 울기를 심히 간절히 하였으나, 임금(단종)이 끝내 대보(옥새)를 전해 주었다. 세조가 마지못하여 대보를 가지고 나오는데,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세조는 결국 일평생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만약 단종이, 나 살려달라 빌었다면 오히려 세조의 마음이 편했을거임
그치만 결국 15살 어린 단종이 ‘니가 이김 가져가셈’ 태도가 세조에게 심리적 영향을 줬을거란게 정론.
태어나자마자 엄마 죽고, 10년 내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연이은 줄초상에
본인만 덜렁 남은 환경이라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도 드러내지 않았을거란 추측이 지배적임

계유정난으로 저렇게 변한거 아니냐 하기엔, 즉위년부터 좀 시니컬하고 무뚝뚝한 면모가 돋보였음.

근데 또 유배가기 전까지 겉으로 보여졌던 정신적 건강은 멀쩡했다고 함 (힘들어겠지만)

설화에선 가족, 한양을 그리워하며 울었단 이야기가 많은데
겉으론 무뚝뚝해도 내심 마음은 연약했던 왕 아닌가 싶음
* 여담
숙종 엄마 명성왕후 김씨(현종 비)는 ‘성격’이 겁나 쎈데, (말 그대로 존나 쎔. 걍 불임)
아들은 그런 엄마의 유전자를 닮아 어릴적부터 지랄 맞기로 유명했음

하루는 김씨가 어린 아들의 머리를 빗어주고 있는데, 아들놈 새끼가 열받게 만들어서
빗으로 머리통 친건 유명한 일화임
도대체가 내 배로 낳은 자식이지만 성격이 아침에 다르고 낮에 다르고 저녁에 또 다르니 세자를 감당해낼 수가 없다!!

어릴적부터 싹수가 노란 숙종은 크고 나선 어미도 두손 두발 다 들 정도의 성질머리가 됩니다

숙종 그남이 유일하게 사랑했던건 고양이란 게 학계의 (웃픈) 정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