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니스 퐁 (Dennis Fong)
1977년 3월 홍콩 출생 미국인 / 닉네임 ‘Thresh’
세계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기네스 북에 등재된 인물


– 1995년 시애틀 저지먼트 데이 대회 당시 –
어릴 적부터 게임을 즐겼던 데니스 퐁은 16살이던 1993년
게임 둠을 시작한 후 빠져들었고 1995년 윈도우 95 출시 기념
MS가 주최한 대회인 ‘저지먼트 데이’ 에 참가했는데
이 대회는 CEO인 빌 게이츠가 둠 영상에 나오는 등 공을 들인
상당히 큰 대회였는데 최종 24명의 참가자 중 챔피언에 오른다

이 대회 우승 후 데니스 퐁은
본격적인 게이머로 거듭났는데

1996년 출시 후 FPS 시장의 주류가 된 퀘이크의 게이머로
전환했고 여러 대회에서 우승하며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고
이후 1997년 지금도 게임 업계와 e스포츠에서
회자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 퀘이크 개발자들과 데니스 퐁이 대결을 한 적이 있는데
거의 일방적으로 데니스 퐁에게 당했다고 한다

– 1997 E3 쇼 –
1997년 애틀랜타에서 진행한 E3 쇼에서 열린
‘레드 애니힐레이션’ 대회로 2000명이 넘는 참가자 중
살아남은 16명이 E3 쇼 현장으로 초대받아 진행됐으며


– 당시 대회 준비 모습 / 어린 팬과 만난 데니스 퐁 –
최종적으로 이 대회 결승전에 오른 데니스 퐁은
14-1로 압승해 우승했고 우승 상금과 함께 경품으로 걸려있던

– 당시 페라리 자동차 –
게임 개발자 ‘존 카멕’ 이 타고 다니던
페라리 328GTS를 받게 되었고 당시 캘리포니아에 살던

데니스 퐁을 위해 존 카멕이 차를 집까지 운반할 비용도
내주었다고 하며 이 대회의 우승은 데니스 퐁 자신에게도

인지도를 올리게 된 큰 경험이었고 지금도 게임 업계에서 회자되는
성공한 게이머의 한 장면으로 꼽히기도 한다.
데니스 퐁은 90년대 중~후반 상금과 스폰서쉽 등
다양한 경로로 연간 1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고 하며
각종 오프라인 행사 섭외나, 광고 출연 등 e스포츠가
본격화되기 전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익을 올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전성기 시절 게임계의 마이클 조던이란 소릴 들으며
전성기를 보냈으며 개인 이력 뿐 아니라
현재는 표준화 된 WASD 키 조합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대중화 시키는데 공을 세운 인물로도 유명하다.
원래 그도 화살표를 쓰던 게이머인데
형인 라일 퐁과 붙으면 자주 패배해 어떻게 하면
더 게임할 때 더 좋을까 고민하다 WASD에 중심을 두고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데니스 퐁은 이후 개인 사업과 손목 부상 등으로
23살에 게이머로서 은퇴했는데
2016년 댈러스에서 열린 퀘이크콘 2016 행사에서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정식 헌액되며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되었으며

게이머로서 기록을
기네스 북 기록으로도 인정받아 정식 등재되었다

은퇴한 데니스 퐁은 이후 사업가의 길을 걸었는데
2002년 공동 창업 후 탄생한 게임 메신저인
Xfire가 크게 성공했고 이후 미디어 기업 ‘바이아컴’ 에
1억 200만 달러를 받고 매각에 성공 큰 이익을 거두었으며

이후에도 게임 통계 분석 서비스인
Raptr를 성공시켰고, 게임 영상 공유 플랫폼인 Plays.tv,
형 ‘라일 퐁’ 과 함께 만든 기업용 관리 플랫폼 리튬 테크놀러지,
게임 커뮤니티 관리 플랫폼 GGWP 등 사업가/투자자로서 시작 후
1조 3000억 이상의 투자 회수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그의 닉네임 ‘Thresh’ 는 ‘Threshold of pain’ 에서
따온 것인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Thresh가
그의 닉네임에서 따온 것도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